셧다운 위기 넘긴 美…트럼프 요구한 '부채한도 폐지'는 불발

미국 의회가 21일(현지시간) 연방정부 업무정지(셧다운) 시한을 40분 넘긴 상태에서 임시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요구한 부채한도 폐지 내용은 이번 예산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미국 상원은 이날 0시40분 내년 3월 14일까지 예산을 사용할 수 있는 내용의 임시 예산안을 찬성 85표, 반대 11표로 가결 처리했다. 엄밀하게는 40분간 셧다운이 발생했다고 판단할 수 있지만 백악관은 “연방 자금의 집행 및 추적은 하루 단위로 이뤄진다”는 이유로 셧다운 없이 운영을 계속했다.

머스크, 의원 퇴출 위협


미국 의회에서 셧다운 직전까지 예산이 통과되지 않는 상황은 종종 있었지만, 이번에는 트럼프 당선인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양당의 지난 18일 합의 내용을 뒤집어야 한다고 요구하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트럼프 당선인은 트루스소셜에 “셧다운을 한다면 조 바이든 정부에서 해야 한다”며 “터무니없는(ridiculous) 부채한도를 폐지하든지, (본인 임기가 끝나는) 2029년까지 유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당선인보다 더 목소리를 높인 것은 머스크였다. 소셜미디어 X에 150여 개의 글을 잇달아 올리면서 공화당과 민주당이 합의한 내용이 ‘낭비’라고 저격했다. 또 “합의안에 찬성하는 의원은 의회에서 퇴출해야 한다”고 위협했다. 공화당은 이들의 주장을 담은 새 예산안을 상정했으나 부채한도 폐지에 공감하지 못한 이들이 많아 공화당에서만 38명의 이탈표가 나오면서 부결됐다. 양측은 다시 부채한도 폐지 내용을 포함하지 않은 새 예산안을 마련해 가까스로 가결에 성공했다.

AP통신은 공화당 의원들의 결정에 대해 “트럼프에 대한 충격적 무시”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1기 정부 백악관에서 입법담당자로 일한 마크 쇼트는 워싱턴포스트(WP)에 “지출 낭비라는 이유로 임시 예산안에 반대하라고 요구하면서 부채한도를 없애 더 많이 지출하겠다는 것은 모순적”이라고 지적했다.


공화당, 내년에 부채한도 늘리기로


최종 통과된 안의 글자 수는 확 줄어들었다. 양당 합의안은 원래 1500쪽이었으나 최종 통과안은 100여 쪽에 불과했다. 그러나 1000억달러 규모의 재난구호 예산, 100억달러 규모 농민 지원 예산 등 주요 예산은 대부분 그대로 포함됐다. 삭제된 부분은 소비자 보호를 위한 숨겨진 수수료 규제, 소아암 연구지원 프로그램, RFK스타디움 부지 이전 등에 관한 내용 등이라고 WP 등은 전했다. 의원들에게 지급하는 생활비를 17만4000달러에서 18만600달러로 3.8% 인상하는 내용도 제외됐다. 그러나 이런 변경으로 인해 예산 규모가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중국 투자를 제한하는 내용도 최종안에서 빠졌다. 이에 대해 민주당 의원들은 중국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는 머스크의 이해관계 때문에 빠졌을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공화당은 대신 자체적으로 내년에 부채한도를 1조5000억달러 늘리고 향후 정부 지출은 2조5000억달러 순삭감하는 것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머스크는 통과 소식이 나오자 X에 “민중의 목소리가 신의 목소리(VOX POPULI, VOX DEI)”라고 적었다.


예산 조정으로 IRA 세액공제 줄일 듯


한편 트럼프 당선인은 자신의 주요 의제를 실현하기 위해 “내년 중 ‘예산 조정’ 절차를 활용해 미국 정부 지출을 수천억달러 줄일 것”이라고 밝혔다. 예산 조정은 예산과 관련된 사안에 한정(사회보장 제외)해 과반(상원 51명)으로도 주요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특수한 절차다.

공화당 내에서는 세금 감면(TCJA) 연장, 국경 장벽 건설 및 불법이민자 추방, 석유·가스 개발 확대 등 주요 의제에 예산 조정 절차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연 1회 사용이 관례여서 핵심 의제를 묶어 패키지 형태로 처리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특히 트럼프 당선인이 지출 감소를 언급한 만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전기차 세액공제 등 각종 지원을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내용이 패키지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나머지 의제는 대부분 세수가 줄어들거나(세금 감면) 지출이 늘어나는(국경 강화) 종류의 정책이기 때문이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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